2026/02/19
베트남 거시경제·투자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쩐 딘 티엔(Trần Đình Thiên) 부교수·박사는 2026~2030년을 “중진국 함정 탈출의 승부처”로 규정하며,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이 일본·한국처럼 ‘소득 수준이 진짜로 올라가는 성장’을 하려면, 지금의 성장 방식(저임금·FDI 의존·양적 확대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민영) 경제, 고급 기술, 그리고 ‘서비스·촉진형 국가(국가가 판을 설계하고 민간이 뛰는 구조)’로 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시간이 짧다”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베트남의 인구 보너스(인구 황금기)가 산업화와 맞물려 작동하는 기간이 길지 않다.
둘째,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고성장 유지가 훨씬 어려워지므로, 경제가 ‘무거워지기 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판단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GDP 1인당’만 보면 베트남이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GNI(국민총소득) 1인당’으로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FDI 비중이 커질수록 GDP는 커져도 이익과 소득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국내에 남는 ‘실질 소득’이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있다. 즉, 중진국 함정 논의는 숫자(1인당 GDP)만이 아니라, 국내 기업·국내 노동자의 소득으로 연결되는지, 생산성과 기술 수준이 함께 올라가는지까지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꼽은 가장 큰 리스크는 ‘대외 의존’이다.
무역과 해외투자(FDI)에 크게 기대는 구조는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 충격을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립·자강을 말로만이 아니라, 국내 경제(특히 민간 부문)가 실제로 커지는 방향으로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민간’은 단순히 창업을 장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민간이 혁신과 투자 효율을 끌어올리는 주체가 되도록 규제·제도·금융·토지 같은 핵심 환경을 다시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아시아에서 중진국 함정을 넘어선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산업의 다층 구조’를 강조한다.
일본과 한국은 대기업·중견·중소기업이 경쟁하면서도 공급망으로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고, 그 연결이 기술 축적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또한 대만(중화민국)의 사례를 들며, 금리를 단순히 ‘낮추는 게 선’이 아니라,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게 만드는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베트남은 금리가 높아도 자금이 효율로 연결되지 못하고 ‘막히는’ 구간이 생기며, 공공부문 중심의 자금 공급이 민간으로 흘러가지 못하면 낭비와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포함돼 있다.
그가 제시한 ‘새 모델의 3대 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경제를 성장의 중심에 두고 장벽을 풀어야 한다.
둘째, 고기술(첨단기술)과 이에 맞는 인력 정책이 결합돼야 한다.
셋째, 국가는 과거 방식(지시·통제 중심)이 아니라 민간이 뛰도록 돕는 ‘서비스·촉진형 국가(국가가 제도·인프라·룰을 정비하는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FDI 전략도 “양”이 아니라 “질”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트남 기업과 연결되고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고급 FDI가 들어오려면, 국내 민간 부문이 충분히 역량을 갖춰야 하며 교육·훈련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올해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는 실행 과제로 5가지를 제시한다.
- ‘막힌 프로젝트’를 풀어 자금이 돌게 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멈추면 투자·고용·민간 회복이 동시에 막히므로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다.
- 토지 제도를 손봐 재산권을 명확히 하고, 토지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시장 원리에 가깝게 정비해야 한다. 투기 가격과 시장 가격을 혼동하면 토지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문제의식이다.
- 자본시장·신용시장을 강화해 기업이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시장이 약하면 민간은 장기 투자를 못 하고 성장의 질이 떨어진다.
- 전자상거래와 연결된 시장 관리가 필요하다. 중국산 초저가 상품 유입이 국내 생산 기반을 압박할 수 있어, 생산 경쟁력과 시장 질서 관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 자유무역지대, 금융센터, 성장 거점 같은 ‘돌파 좌표’를 만들더라도, 세계 무역 갈등(보호주의 vs 자유화) 구도 속에서 베트남이 외부 규칙 변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부족하면 자본이 빠르게 들어왔다가 빠르게 빠지는 ‘단기 쏠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 인터뷰가 주는 시사점은 베트남을 ‘FDI 친화 국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국내 민간의 경쟁력, 토지·금융·규제 환경, 그리고 기술·인력 업그레이드가 실제로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이다.
베트남이 2026~2030에 이 과제들을 제대로 실행한다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 제조 이전을 넘어 고부가 협력(부품·소재, 자동화, 디지털 전환, 인력양성, 로컬 파트너 생태계 구축) 기회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실행이 지연되면, 성장 숫자는 유지돼도 국내 소득과 생산성의 ‘질적 점프’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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