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
1945년 8월 말, 하노이 48 항낭(48 Hàng Ngang)의 작은 2층 다락방. 식사와 접객을 겸하던 방 한켠에 놓인 작은 네모난 탁자 위에서 호치민(胡志明) 주석은 낡은 타자기를 두드리며 베트남의 운명을 바꿀 독립선언서를 집필했다.

총봉기 이후 하노이가 일본군으로부터 정권을 장악하자, 호치민과 당 중앙은 탄쩌우(戰區, Tân Trào)에서 도보로 하노이에 입성했다. 항낭 48번지는 민족주의적 자본가 쩐 반 보(Trịnh Văn Bô) 부부의 저택으로, 이 집은 임시 중앙당 거점이 되었고, 호치민은 동지들과 함께 2층에서 기거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그곳은 중앙당 상무위원회가 임시정부 발표와 독립 선포 일정을 결정한 회의실이자, 곧바로 독립선언서 초안이 탄생한 장소였다. 호치민은 8월 28일부터 원고를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당시 함께 있던 이들조차 그가 ‘주석’임을 알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비밀리에 진행됐다.
사실, 호치민은 이미 5월 탄쩌우 시절부터 미국 OSS(전략사무국) 연락병을 통해 미국 독립선언서 사본을 공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는 8월 초, 룽꼬( Lũng Cò) 마을 임시 활주로에 미군 항공기가 투하했다. 미국 독립선언서 문구는 후일 베트남 독립선언서 첫머리에 인용된다.
8월 29일, 호치민은 OSS 인도차이나 책임자 아르키메데스 패티(Archimedes Patti) 소령에게 초안을 보여주었다. 패티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의 문구와 흡사하다”며 놀랐고, 호치민은 미소를 지으며 “내가 이 문장을 쓰면 안 됩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유·생명·행복의 순서를 새롭게 배열하며, “자유 없는 생명은 없고, 자유 없는 행복도 없다”라는 새로운 의미를 담았다.
8월 30일, 호치민은 쩐 쯔엉 찐 (Trường Chinh)과 보 응우옌 지압 (Võ Nguyên Giáp) 장군을 비롯한 동지들에게 초안을 낭독해 의견을 구했다. 잡 장군은 훗날 그 순간을 “호치민의 얼굴에 비친 환희는, 26년 전 베르사유 회의에서 거절당했던 청년 응우옌 아이 꾸옥(Nguyễn Ái Quốc)의 한을 풀어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마지막 수정은 8월 31일, 그리고 9월 2일 오전 10시, 호치민은 50만 인파가 운집한 바딘 광장(Quảng trường Ba Đình) 의 연단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당시 그는 후원자인 쩐 반 보 부부가 마련해준 카키 옷을 입고, 낡은 모자를 쓴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연설은 식민지 80년의 고통을 끝내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오늘날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의 탄생을 전 세계에 선포한 역사적 순간이 되었다.
출처 : https://vnexpress.net/bon-ngay-chu-tich-ho-chi-minh-viet-tuyen-ngon-doc-lap-49248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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